[헬스컨슈머] 술을 마시지 않았는데도 술에 취한 것처럼 얼굴이 붉어지고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증상이 반복된다면 단순한 피로나 컨디션 문제로 넘겨서는 안 된다. 기자의 지인 역시 술자리에서 술을 한 모금도 마시지 않았는데 어느 순간 술을 마신 사람처럼 비틀거리며 말이 어눌해지는 증상을 반복적으로 경험했다. 주변에서는 혹시 몰래 술을 마신 것이 아니냐는 오해까지 했지만 실제로는 술을 전혀 마시지 않은 상태였다.
이후 원인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주목받은 질환이 바로 ‘장내 양조 증후군(Auto-Brewery Syndrome)’이다. 매우 드문 질환으로, 장내 특정 미생물이 섭취한 탄수화물을 발효하면서 에탄올을 과도하게 생성해 실제로 술을 마신 것과 비슷한 증상을 일으킬 수 있다.
장에서 실제로 알코올이 만들어질 수 있을까
장내 양조 증후군은 ‘자동 양조 증후군’ 또는 ‘장 발효 증후군’이라고도 한다. 우리 몸속 장에서는 다양한 미생물이 살아가며 음식물을 분해하는데, 일부 효모나 세균은 탄수화물을 발효하는 과정에서 소량의 에탄올을 만들어낼 수 있다.
일반적으로는 생성되는 양이 매우 적어 문제가 되지 않지만, 특정 미생물이 비정상적으로 증식하거나 장내 미생물 균형이 무너지면 에탄올이 과도하게 생성될 수 있다. 이렇게 만들어진 에탄올이 혈액으로 흡수되면서 혈중알코올농도가 높아지고, 결과적으로 실제 음주와 유사한 증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핵심 원인은 장내 미생물의 불균형
장내 양조 증후군의 정확한 발생 원인은 아직 완전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장내 미생물의 불균형이 주요 요인으로 꼽힌다. 특히 사카로마이세스(Saccharomyces)와 칸디다(Candida) 같은 효모가 탄수화물을 발효해 에탄올을 만들어내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일부 사례에서는 클렙시엘라(Klebsiella)와 같은 세균이 관련된 것으로 보고됐다.
항생제 사용 역시 위험 요인으로 거론된다. 항생제를 장기간 또는 반복적으로 복용하면 장내 정상적인 미생물 균형이 깨지면서 특정 효모나 발효 능력이 있는 미생물이 과도하게 증식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당뇨병이나 크론병, 장운동 이상, 단장증후군 등 장내 환경에 영향을 미치는 질환도 관련 요인으로 언급된다. 다만 이러한 위험 요인이 없더라도 장내 양조 증후군이 발생하는 사례가 있어 특정 원인 하나만으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탄수화물 섭취 후 ‘취한 듯한’ 증상
가장 대표적인 증상은 실제로 술을 마신 것과 비슷한 상태가 나타나는 것이다. 어지럼증과 비틀거림, 말이 어눌해지는 증상부터 집중력과 판단력 저하, 졸림, 혼란, 운동능력 저하 등이 나타날 수 있다. 경우에 따라 두통이나 극심한 피로감, 기억력 저하 등을 호소하기도 한다.
장내 양조 증후군은 소화기 증상을 동반하기도 한다. 복부 팽만과 복통, 메스꺼움, 구토, 설사 등이 나타날 수 있으며, 특히 밥이나 빵, 면, 당류 등 탄수화물이 많은 음식을 섭취한 뒤 증상이 심해지는 양상을 보일 수 있다. 외부에서 술을 마시지 않았음에도 알코올 냄새가 나거나 실제 혈중알코올농도가 상승할 수 있다는 점도 특징이다.
문제는 이러한 증상이 단순한 건강상의 불편함에 그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환자가 실제로 술을 마셨다고 오해받거나 직장과 대인관계에서 불필요한 갈등이 발생할 수 있으며, 운전 중 증상이 나타날 경우 교통사고나 음주운전 오인 등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진단은 다른 원인을 배제하는 과정부터
장내 양조 증후군은 매우 드문 질환인 데다 증상이 다른 질환과 비슷해 진단이 쉽지 않다. 따라서 의료진은 먼저 실제 음주 여부와 복용 중인 약물, 최근 항생제 사용 여부, 식습관, 기존 장질환 등을 종합적으로 확인한다. 이후 혈중알코올농도나 호흡 알코올 농도를 측정하고, 필요에 따라 혈액검사와 대변검사 등을 시행해 다른 원인과 장내 미생물 이상 여부를 확인한다.
진단 과정에서는 탄수화물 부하 검사가 활용되기도 한다. 의료진의 관리 아래 일정량의 탄수화물을 섭취한 뒤 일정 시간 동안 혈액이나 호흡 속 에탄올 농도를 측정하는 방식이다. 외부에서 알코올을 섭취하지 않았는데도 탄수화물 섭취 후 체내 에탄올 농도가 상승한다면 장내에서 알코올이 생성되고 있을 가능성을 뒷받침할 수 있다. 다만 장내 양조 증후군은 아직 표준화된 진단 기준과 검사법이 완전히 확립된 질환이 아니기 때문에 전문 의료진의 종합적인 판단이 중요하다.
치료는 원인 미생물을 줄이고 장내 환경을 회복하는 것
치료의 기본 방향은 장내에서 에탄올을 과도하게 생성하는 미생물을 줄이고 정상적인 장내 미생물 균형을 회복하는 것이다. 원인으로 효모나 곰팡이가 확인된 경우 의료진의 판단에 따라 항진균제를 사용할 수 있으며, 특정 세균이 관련된 것으로 확인되면 원인균에 맞는 항균 치료를 고려할 수 있다. 다만 모든 환자에게 동일한 치료법을 적용하는 것은 아니며 원인 미생물과 환자의 건강 상태에 따라 치료 방법이 달라진다.
식단 관리도 치료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에탄올 생성에 사용될 수 있는 탄수화물 섭취를 일시적으로 줄이는 방식이 활용될 수 있으며, 증상을 유발하는 음식과 증상이 나타나는 시간 등을 기록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다만 탄수화물을 지나치게 제한하면 영양 불균형이 발생할 수 있으므로 의료진이나 영양 전문가의 지시에 따라 적절하게 조절해야 한다.
재발 막으려면 장내 환경 관리해야
장내 양조 증후군은 증상이 좋아진 이후에도 재발할 가능성이 있어 장내 환경을 지속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불필요한 항생제 사용을 피하고 균형 잡힌 식사를 유지하며, 당뇨병이나 장질환 등 관련 기저질환이 있다면 적극적으로 관리해야 한다.
일부 사례에서는 프로바이오틱스나 대변미생물 이식 등이 치료에 활용되기도 했지만, 아직 장내 양조 증후군의 표준 치료로 확립됐다고 보기는 어렵다. 따라서 인터넷 등을 통해 임의로 특정 영양제나 유산균을 복용하기보다는 정확한 원인을 확인한 뒤 의료진과 치료 방법을 결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술을 마셨다’는 오해보다 정확한 진단이 먼저
술을 전혀 마시지 않았는데도 반복적으로 술에 취한 것과 같은 증상이 나타난다면 단순히 특이한 체질이라고 생각하기보다 정확한 원인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특히 탄수화물이 많은 음식을 먹은 뒤 비틀거림이나 어지럼증, 말이 어눌해지는 증상이 반복되거나 최근 항생제 사용 이후 비슷한 증상이 나타났다면 의료진에게 구체적인 상황을 설명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장내 양조 증후군은 흔한 질환은 아니지만 실제로 체내에서 생성된 에탄올 때문에 혈중알코올농도가 상승하고 음주와 유사한 증상이 나타날 수 있는 질환이다. 다만 비틀거림이나 의식 변화, 말 어눌함 등의 증상은 신경계 질환이나 대사 이상 등 다른 원인으로도 발생할 수 있는 만큼 장내 양조 증후군으로 단정해서는 안 된다. 반복적으로 원인을 알 수 없는 ‘취한 듯한 증상’이 나타난다면 전문적인 검사를 통해 원인을 확인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