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가 사람을 살리는 시대 오나
돼지가 사람을 살리는 시대 오나
  • 강지명 기자
  • 기사입력 2019.08.21 15:09
  • 최종수정 2019.08.21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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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게티이미지 코리아
사진제공: 게티이미지 코리아

[헬스컨슈머]지난 8월 2일, <첨단재생의료 및 첨단바이오 의약품 안전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이하 재생의료법)>이 국회에서 통과되었다. 국내 바이오 업계가 손꼽아 기다리던 순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이 결과는, 한국의 미래 먹거리의 하나로 평가받는 이종이식 분야에 긍정적 영향을 줄 것으로 업계는 예상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종이식이란 무엇이고, 왜 필요하며, 이것이 왜 한국의 미래 먹거리라고 불리는 것일까?

 

[이종이식, 이제는 돼지가 사람의 목숨을 구한다]

바이오이종장기개발사업단에 따르면, 이종이식이란 기능을 상실한 사람의 조직이나 장기를 대체하기 위해 개발된 동물(일반적으로 무균 미니돼지)로부터 건강한 조직이나 장기를 분리, 환자에게 이식하는 기술이다. 한마디로 사람이 필요한 장기를 돼지에게서 얻는다는 의미이다. 그렇다면 이것이 왜 필요한 것일까?

인류의 역사는 발전의 가도를 달려왔고, 과학과 기술의 발전은 인류의 곳간을 더욱 풍성하게, 그 수명을 더욱 늘어나게 했다. 하지만 빛이 있으면 어둠도 있어라, 풍성해진 곳간만큼의 만성질병과 늘어난 수명만큼의 병원신세는 오늘날 인류가 마주한 현실이다.

때문에 전세계적으로 만성질환으로 인한 장기이식 대기자의 수는 매년 치솟지만, 그에 반해 공여 장기는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이 펼쳐졌고, 이 추세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때문에 장기를 얻기 위한 불법적 원정 이식, 심지어는 일부 국가에서 자행되는 장기 밀매 등 사회적 문제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이는 국내 역시도 마찬가지인데, 국내 통계에서는 환자가 필요한 장기를 제때 이식받지 못해 사망자수가 하루 평균 5.2명에 달한다. 질병관리본부 장기이식관리센터의 자료에 따르면, 국내 장기이식 대기자는 2018년 기준 3만 2656명에 달하며, 이는 최근 2년간 30%가량 증가한 것이다.

이종이식은 이런 당금의 장기수급 불균형 문제를 근본적으로 가장 빠르게 해결할 수 있는 방법으로, 이식을 통해 장기 기능에 문제를 겪는 환자의 치료 가능성을 높여 우리 국민이 누릴 수 있는 의료보건의 질을 높이고, 그로 인해 파생되었던 사회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으로 평가받고 있다.

 

[왜 하필 돼지일까?]

그럼 여기서 의문이 하나 생길 수 있다. 왜 하필 돼지일까? 돼지는 사람과 별로 닮지도 않았고, 더러워 보이는데? 그에 대한 대답은 크게 3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 첫째는 비용의 문제에 속하는 출산 개체수, 성장 속도, 그리고 신체 대비 장기의 크기이다.

물론 생물학적으로 봤을 때 원숭이나 침팬지 등의 영장류가 인간과 가장 흡사하다. 하지만 이런 영장류는 멸종 위기에 처해 있으며, 한 번에 1~2마리 정도만 출산하고 성장속도가 느리다. 또한 장기의 크기 역시도 중요한 요소인데, 사람과 비슷한 크기의 장기를 얻기 위해서는 마찬가지로 사람과 비슷한 크기의 영장류가 필요하다. 이런 모든 요소는 비용상의 효율 문제로 귀결된다.

반면, 무균 미니돼지는 의외로 생물학적으로 사람과 유사하고 장기 크기도 사람의 장기와 비슷하다. 임신 기간도 114일로 상당히 짧고, 5~12마리를 한번에 출산하는 다산의 특징이 있다.

- 둘째는 관리의 문제에 속하는 감염원의 문제이다.

영장류란 무릇 사람과 비슷해, 사람에게 위협적인 치명적인 바이러스등의 감염원을 가지고 있을 수 있다. 가장 대표적인 예시가 바로 에이즈와 같은 인수 공통 질병이다.

돼지란 영장류와 달리, 가축화를 통해 기나긴 세월동안 사람과 같이 생활한 동물이다. 그래서 돼지는 인류가 지금껏 마주하지 못했던 새롭고 치명적인 감염원을 보유하고 있을 가능성도 낮다. 뿐만 아니라 사육 난이도도 영장류에 비해 낮아 비교적 간단하게 무균 사육이 가능하고, 형질전환을 통해 면역 거부반응을 줄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따라서 공여 동물로 이용하기에 여러모로 유리한 특성을 가지고 있다.

- 셋째로는 윤리적 문제이다.

침팬지 등의 영장류는 지능도 높고 인류와 흡사해 이를 단순히 장기공여용으로 사용하게 될 경우 윤리/도덕적 문제로 확대될 수 있다.

하지만 돼지는 지능도 상대적으로 낮고, 긴 시간동안 고기를 위해 사육되어왔다. 따라서 무균 미니 돼지의 목숨을 취하는 것은 단순히 장기공여용이 아니라 고기를 얻기 위한 대부분의 가축의 처리과정과 별반 차이가 없다는 점에서 윤리/도덕적 문제를 최소화할 수 있다.

사진제공: 게티이미지 코리아
사진제공: 게티이미지 코리아

[이것이 정말 우리의 새로운 국가 경쟁력이 될 수 있을까]

바이오이종장기개발사업단 등을 비롯한 한국의 이종이식 연구단체들은 이미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독보적인 연구성과를 거둔 바 있다. 돼지 췌도와 각막을 영장류에 이식하는 비임상 실험에서 세계 최장기간 동안 안정된 혈당수치를 보이는 성과를 달성했고, 이 외에도 세계 최초로 국제이종이식학회(IXA)가 제시한 이종이식 임상시험 가이드라인을 만족하는 비임상 시험에 성공했다. 돼지 각막을 영장류에 이식하는 비임상 시험에서도 세계 최초로 전층 각막 이식에 성공했고, 임상연구심의위원회(IRB)승인을 받았다.

하지만 아직까지 우리나라에선 제대로 된 제도와 법규가 마련되지 않았다. 특히 상용화를 위해 필수적인 임상시험의 경우 아직까지 이종이식 임상시험에 관련된 제도가 마련되어 있지 않고, 관리 감독할 정부 부처 역시도 명확하게 정해지지 않은 상태인지라 기업들이 임상시험 진행에 어려움이 있는 상태이다.

미국의 경우 이종이식 법규가 마련되어 있어 이종이식 임상시험을 적절한 제도하에 시행할 수 있고, 중국은 정부 차원에서 이종이식의 기술개발을 위해 적극적으로 후원중이다. 심지어 우리가 불매운동 등을 통해 ‘이번에는 지지 않겠다’라고 부르짖는 일본은 이종이식 관련 법률 완비(2014년), 동물 장기와 세포의 인간 이식 허용(2016년) 등의 제도를 완비해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의 이식 대기자들을 쓸어모으고 있는 중이다.

관련 전문가들은 이종장기를 포함한 인공장기 시장 규모가 연평균 7.33% 증가해 2024년에는 448억 달러(약 53조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다행히 아직까지 이 분야에서 정부의 제대로 된 지원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기업들이 가장 앞서나가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제대로 국가 차원의 제도가 없이는 한계가 있을 수 있다. 미래시장의 새로운 경쟁력을 위해 모두가 뜻을 모아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