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나지 않을 당신의 밤은 누가 지켜주나
기억나지 않을 당신의 밤은 누가 지켜주나
  • 이연우 기자
  • 기사입력 2019.08.30 09:00
  • 최종수정 2019.08.29 16: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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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유병을 조심하라

[헬스컨슈머] 기자가 어릴 적 몽유병을 앓았던 때가 있었다. 아침이 되면 부모님이 왜 자꾸 새벽에 나와서 걸어 다녀라며 꾸짖었던 기억이 난다. 다행히 청소년이 된 후 기억나지 않을 새벽은 사라졌지만, 불안한 마음이 마음 한 구석에 자리하고 있다. 몽유병은 본인의 이성적인 의지가 배제된 채 이상행동을 보이는 병이기 때문이었다. 실제로도 일부 몽유병 환자들이 잔인한 범죄를 저지르고도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이에 몽유병은 무엇이고, 그 상태로 어떤 일까지 발생할 수 있는지를 이번 기사에서 알아보고자 한다.

사진제공: 게티이미지코리아
사진제공: 게티이미지코리아

[잔혹했던 살인의 밤]

-아내를 26번 칼로 찌른 남자

1981년 미국, 스티븐이란 남자가 아내를 26번이나 칼로 찔러서 죽인 사건이 발생했다. 법원에서 스티븐은 자신이 몽유병의 상태에서 사건을 저지른 것이며, 범행 사실이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한 의사로부터 사건 당시 해리상태에 있었을 것이라는 소견을 받았다. 결론적으로 스티븐은 심신상실 상태를 인정받고 무죄를 판결 받았다. 또한 이 사건이 큰 이슈로 떠오르자, 일부 도시에서는 유사한 사건이 발생할 경우 심신상실이나 유죄라는 형을 판결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형은 심신상실을 인정하지만 감옥 대신 정신병원에서 복역해야 한다는 의미다.

-장모를 죽인 남자

1987년 캐나다, 케네스 파크스가 장모를 쇠막대기로 폭행하여 죽인 사건이 있었다. 파크스 역시 몽유병을 주장했고, 자의에 의한 행동이 아니라고 말했다. 하지만 당시 법원에서 논란이 되었던 부분은, 파크스가 자동차를 운전해서 약 20km나 떨어진 처갓집으로 향했던 점이다. 또한 파크스는 도박중독과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결론적으로, 전문가들은 몽유병 환자가 운전을 하고 폭행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언급했고, 파크스는 많은 의혹에도 불구하고 무죄를 받게 되었다.

-아내를 44번 칼로 찌르고, 시신 유기한 남자

1997년 미국, 앞서 언급했던 첫 번째 사건과 유사한 상황이 발생했다. 스캇이란 남자가 아내를 44번 칼로 찌르고, 수영장에 시신 유기하려고 하다가 이웃주민에 의해 발각된 사건이었다. 스캇 역시 자신을 몽유병 환자라고 진술했다. 하지만 스캇이 44번이나 아내를 찔렀던 점, 시신 유기를 하려고 했던 점, 피 묻은 잠옷을 바꾸어 입었던 점, 자신의 상처에 반창고를 붙였던 점 등 수상한 정황들이 발견되었다. 이에 배심원들은 스캇에게 유죄를 판결했다.

그런데 왜 법원은 잔혹한 살인을 저지른 사람들에게 무죄를 선고했던 것일까? 이와 같은 이유로는 영미법에서 범죄가 성립되기 위해 필요한 것 중 하나가 자의이기 때문이었다.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저지른 행위는 범죄가 되기 어렵다. 따라서 이러한 판결이 존재했고, 이를 악용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당시 몽유병은 살인 혐의를 변호하기 위한 장치로 숱하게 사용되었다고 전해진다.


[몽유병을 조심하라]

한편, 국내에도 몽유병 환자에 의한 폭행사건들이 발생하고 있다. 2015년도에는 군대에서 몽유병환자에게 맞아 시력을 잃은 병사도 있었고, 최근에는 어린 자식의 뼈를 부러뜨리고 몽유병 상태였다고 주장한 아버지도 있었다.

이처럼 몽유병 상태에서 발생하는 범죄들이 존재하는 상황이다. 물론 정말로 몽유병 상태에서 범죄를 저지르는 것이 가능한 일인가는 본인들만 아는 비밀이지만 말이다. 그렇다면 몽유병은 정확히 어떤 상태를 의미하는 것일까?

몽유병의 정확한 명칭은 수면보행증이다. 수면보행증이란, 수면 도중 잠자리에서 일어나 돌아다니는 등 이상행동을 보이는 각성 장애를 말한다. 몽유병은 모든 연령대에서 나타나지만, 주로 어린 시절에 발생하며 아동의 10~30%는 몽유병을 한번쯤 경험한 적 있다고 한다.

논렘 수면 (안구 운동이 거의 없는 상태)

1~2단계: 졸리기 시작하며 얕은 잠을 잔다

3~4단계: 깊은 잠에 빠져드는 시간으로 호흡과 심장박동이 느려진다

렘 수면 (안구 운동이 있는 상태)

5단계: 꿈을 꾸는 시간으로 눈동자의 움직임이 관찰된다

인간의 수면은 5가지 단계로 나눠서 설명이 가능하다. 이 단계 중 몽유병의 증상은 3~4단계에서 발생한다고 추정되고 있다. 몽유병은 중추신경계의 활성으로 인해 논렘수면과 렘수면 상태가 교란되어 생긴다고 알려져 있다.

또한 몽유병의 원인에 대해서 정확히 밝혀진 바는 없지만, 유전적 요인이 영향을 미친다고 추측되고 있다. 예를 들어 형제나 부모가 몽유병을 앓았다면, 당신이 몽유병을 경험할 확률은 일반인들보다 약 10배 정도 높다.

사진제공: 게티이미지코리아
사진제공: 게티이미지코리아

그러면 몽유병을 앓는 사람들의 증상은 무엇일까? 보통 환자들은 걸어 다니거나, 알 수 없는 말을 하고, 눈은 초점이 흐릿한 상태이다. 몽유병이 심한 경우, 운전을 하거나 난폭한 행동을 보여줄 때도 있다고 한다. 또한 환자들은 깨어난 후 자신의 행동을 기억하지 못한다.

그런데 다수의 병원에서, 대부분의 몽유병 환자에게, 특별한 치료는 필요하지 않다고 말하고 있다. 환자들이 수면을 잘 취할 수 있도록 안전한 환경을 만들고, 증상이 심할 경우 약물치료를 받는 것이 몽유병의 기본적인 치료방법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몽유병은 기본적인 치료로는 부족한 병이다. 앞서 언급한 범죄나 환자가 스스로 창문으로 뛰어내리는 등의 위험한 일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몽유병에 대한 연구가 더 진행되어야 하고, 가벼운 증상이라도 안심하기는 이르며, 더욱 다양한 치료방법이 개발될 필요가 있다. 만약 당신 또는 자녀가 몽유병을 앓고 있다면, 몽유병에 대한 경각심을 가지고, 주변 안전관리에 힘쓰는 것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