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컨슈머] 직장인 장 씨(30세)는 소개팅 상대와의 첫 만남을 앞두고 고민이 크다. 바로 탈모 때문이다. 장 씨는 군대를 전역한 20대 초반부터 머리숱이 줄기 시작해, 현재는 이마 라인과 정수리까지 탈모가 진행된 상태다. 몇 년 전에는 지인의 권유로 남성형 탈모증 치료제 ‘피나스테리드’ 복용을 고민해보았지만, 발기부전과 같은 성기능 장애가 생길 수 있다는 소문을 듣고 약 처방을 포기했다.
비단 장 씨만의 걱정은 아니다. 남성형 탈모증을 겪는 환자들이 모이는 온라인 커뮤니티 등지에서는 피나스테리드의 부작용을 놓고 열띤 토론이 심심찮게 벌어지곤 한다. 주로 성기능 장애와 피로감, 그리고 ‘브레인 포그’라고 불리는 기억력 감퇴에 대한 이야기들이다. 일부 환자들은 이러한 소문에 겁을 먹고 약 복용을 꺼리는 경우가 많다. 과연 이 소문들은 사실일까.
[남성형 탈모증과 피나스테리드]
부작용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선 병과 약에 대해 알 필요가 있다. ‘남성형 탈모증(안드로겐 탈모증)’이란, 이름처럼 남성들에게서 흔히 나타나는 탈모증으로 이마 양쪽 측면과 정수리에서부터 탈모가 시작된다. 처음엔 모발이 얇아지면서 머리숱이 줄어든 것 같다는 느낌을 받게 되지만, 이후 점차 머리가 빠지기 시작한다. 이마 라인은 소위 말하는 ‘M자 탈모’가 되고 정수리도 벗어진다. 결국 M자 라인과 정수리 탈모가 점점 만나게 되고, 옆머리와 뒷머리를 제외한 대부분의 윗머리가 빠지게 된다.
이런 비극이 일어나는 원인은 ‘5-알파 환원효소’라는 물질에 있다. 체내에서 분비되는 5-알파 환원효소는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을 더 강력한 남성호르몬인 ‘DHT(디하이드로테스토스테론)’으로 바꾸는데, 이 DHT가 하필이면 두피에 있는 모낭에 작용해 머리카락을 빠지게 만드는 것이다. 따라서 원인이 되는 5-알파 환원효소를 차단한다면 남성형 탈모증을 개선시킬 수 있다. 그 성분이 바로 ‘피나스테리드’다.
피나스테리드는 본래 전립선 비대증을 치료하기 위해 ‘프로스카’라는 이름으로 개발된 약물이다. 그런데 이 약을 복용한 일부 환자들의 탈모증이 개선된 것으로 나타나, 연구를 통해 약의 용량을 낮춰서 탈모증에 사용될 수 있도록 ‘프로페시아’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개발한 것이다.
따라서 용량만 다를 뿐 전립선 비대증 치료제와 같은 성분을 복용하는 것이기 때문에, 전립선에 영향을 줘 성기능에 문제를 일으킬 것이라는 추측과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는 것이다. 그렇다면 탈모 치료약은 소문처럼 발기부전과 정액 감소 등 성기능 부작용을 가져올까?
[머리카락과 남성성, 꼭 하나는 포기해야 할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다. 물론 탈모 치료제는 5-알파 환원효소를 차단해 상대적으로 여성호르몬을 증가시키긴 한다. 하지만 성기능에 영향을 주는 테스토스테론 자체를 억제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정해진 복용량을 지킨다면 환자들이 우려하는 심각한 수준의 부작용을 초래할 정도는 아니라는 것이다. 또한 부작용에 대해서 환자들의 심리적인 요인도 크다고 제조사들은 말한다.
탈모 치료제에 동봉된 설명서에 따르면, 임상에서 피나스테리드 1mg을 1년간 복용한 환자들 중 성욕감퇴는 1.8%, 발기부전 1.3%, 사정액 감소 1.2%로 부작용이 보고됐지만, 가짜 약을 복용시킨 대조군에서도 성욕감퇴 1.3%, 발기부전 0.7%, 사정액 감소 0.7%의 부작용이 나타났다고 한다. 또 다른 실험에서는 성기능 장애에 대해 사전에 인지한 집단이 그렇지 않은 집단에 비해 부작용이 3배 높게 보고됐다고 한다. 말하자면 ‘플라시보 효과’의 반대인 ‘노시보 효과’가 작용하는 셈이다.
[피로는 간 때문이야]
반면 약 복용 후 피로감이 심해졌다는 주장은 일리가 있다. 흔히들 “피로는 간 때문이야”라는 광고 문구를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처럼 간은 우리가 느끼는 피로도와 관련이 깊은데, 탈모약의 피나스테리드라는 성분은 간에서 산화과정을 통해 대사가 진행된다. 따라서 탈모약 복용 시 피로감이 느껴지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는 꼭 ‘피나스테리드’라는 성분 때문은 아니다. 우리가 먹는 대부분의 약은 위장 벽을 통해 간으로 전달되고, 그곳에서 대사가 이뤄진 뒤 몸 전체로 전달된다. 따라서 간에서 대사가 일어나는 약물이라면 종종 피로감을 느끼게 되는 경우가 있다. 대표적인 약물이 흔히 ‘타이레놀’이라는 상표명으로 알려진 진통제 ‘아세트아미노펜’이다. 이 역시 설명서에 ‘비정상적인 피로감’이라는 부작용이 안내되어있다.
[머리카락 지키려다가 머리가 나빠진다고?]
탈모 치료약의 부작용 중 또 한 가지 거론되는 것이 바로 ‘브레인 포그(Brain fog)’증상이다. 브레인 포그란 마치 머릿속이 안개가 낀 것처럼 혼란스러워져, 사고력이 저하되고 기억력이 감퇴돼 말하고자 하는 단어가 생각나지 않는 등의 이상을 보이는 증상이다. 이 때문에 일부 환자들 사이에선 탈모약이 치매를 유발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기도 한다.
실제로 우리의 뇌에서 기억을 저장하고 다시 떠올리는 기능은 ‘해마’라는 기관이 담당하는데, 해마에 이상이 생기면 기억력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그런데 해마에는 안드로겐 수용체가 있어서 테스토스테론이나 DHT와 같은 남성 호르몬을 수용하는 작용을 한다. 따라서 남성호르몬이 해마의 기능과 관련이 있을 것이라는 추측이 있다. 이외에도 5-알파 환원효소가 차단되면 신경전달 물질이 감소돼 기억력 감퇴가 생기는 것이라는 주장도 있지만 이는 모두 정확히 규명되지 않은 추측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의 입장은 부정적이다. 한 탈모 전문 병원의 원장은 “1년에 2천여 명 이상에게 탈모약을 처방해왔지만 브레인 포그 현상을 겪었다는 사례는 1~2명 밖에 보지 못했다”면서 “과연 연관성이 있는지 의구심이 든다”고 밝혔다. 이외에도 부작용과 관련해서는 심리적인 요인이 크기 때문에 지나친 걱정은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일으킨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구더기 무섭다고 장 못 담가서야]
이렇듯 실제 부작용 사례들은 극히 소수에 불과하고, 떠도는 소문처럼 심각한 수준은 아니다. 한 대학병원의 피부과 교수는 “부작용이 있더라도 호르몬은 결국 균형을 찾기 때문에 지속해서 복용하면 다시 회복이 된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부작용이 걱정된다면 약을 완전히 끊는 대신 복용량을 줄이거나, 다른 약으로 바꿔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탈모인들 사이에서 나오는 부작용에 대한 우려는 분명 과장된 면이 있지만 전혀 없다고도 단언할 수 없다. 허나 이것 하나는 확실하다. 피나스테리드는 다양한 장기 임상을 통해 남성형 탈모 치료에 유효하다고 검증된 약물이다. 따라서 매일 아침 머리를 감을 때마다 한 움큼씩 잡히는 머리카락에 가슴이 아프다면 피나스테리드가 정답이다. 판단은 환자들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