뽀얀 국물에 송송 썬 대파 한 줌, 후추와 소금 약간. 거기에 깍두기까지 있으면 금상첨화. 뜨끈한 사골국 한 그릇은 추운 겨울날 별다른 찬 없이도 밥 한 공기를 비우게 만드는 ‘별미’이자 한국인의 ‘소울푸드’ 중 하나다.
소의 다리뼈를 끓여 만든 사골국은 칼슘을 비롯한 영양소가 풍부하다고 여겨져, 예로부터 부러진 뼈도 붙게 하는 ‘보양식’으로 인정받아왔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여전히 집집마다 냉동실 한 편에선 꽁꽁 언 사골국물이 비상식량과 영양제로서 지위를 누리고 있다.
허나 사골 국물로 건강을 챙기겠다는 생각은 접어두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사골국의 ‘효능’에 대한 진실은 알려진 바와 다르기 때문이다.
[칼슘, 우유보다 적게 들어]
흔히 사골국은 칼슘 함량이 높아 골절, 골다공증 환자에게 좋다고 알려져 왔다. 하지만 사골국 한 그릇에 든 칼슘은 100ml 기준 5~20mg 정도로, 100ml 당 200mg 가량의 칼슘이 들어있는 우유의 10분의 1 수준이 채 되지 않는다.
심지어 대형마트나 편의점을 통해 유통되는 일부 레토르트 제품 중에서는 칼슘이 전혀 들지 않은 것도 있었다. 흔히 마시는 미네랄워터 중에선 리터당 40mg의 칼슘이 들어있는 것도 있으니, 어떤 것은 ‘생수’보다 칼슘이 적게 든 셈이다.
[‘인’ 과잉 섭취는 과유불급]
또 사골을 오랫동안 끓이면 뼈와 치아를 구성하는 ‘인’이라는 영양소가 칼슘보다 많이 우러나는데, 인과 칼슘의 섭취가 불균형해질 경우 소장에서 칼슘의 흡수를 막아 외려 뼈 건강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한다.
설상가상인 점은 한국인의 식습관이다. 인 성분은 한국인의 주식인 쌀밥에 이미 많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질병관리본부가 발간한 2017 국민건강통계에 따르면, 한국인은 일일 영양섭취 권장량 대비 32.5% 적은 칼슘을 섭취했지만 인은 49%나 초과해 섭취했다고 한다.
[심혈관 질환 환자는 유의해야]
사골을 직접 끓여본 주부들이라면, 걷어내고 또 걷어내도 하염없이 떠오르는 기름에 당황한 기억이 있을 것이다.
이처럼 사골국은 포화지방과 콜레스테롤이 많은 음식이기 때문에 고지혈증이나 심혈관질환의 원인이 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한 대학병원의 심장혈관내과 교수는 “심혈관 질환을 앓은 적이 있거나 고지혈증, 당뇨가 있는 사람들은 사골 국물을 오랜 기간 먹는 것은 피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기름과 나트륨은 빼고, 골고루 섭취해야]
사골 국물을 정 먹어야겠다면 영양균형에 유의해야 한다. 전문가들은 칼슘과 인을 1:1의 비율로 섭취하는 것이 이상적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쌀밥 등에 많이 든 ‘인’ 섭취는 줄이고 미역이나 멸치, 우유 등 칼슘이 많이 든 음식을 고루 섭취하는 것이 좋다. 상황이 여의치 않다면 부족한 칼슘을 보충해줄 수 있는 ‘칼슘영양제’나, 뼈 건강에 도움이 되는 ‘비타민 C’, ‘비타민 D’를 챙겨 먹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간을 맞출 때에는 한 번 마시면 ‘바닥’을 보게 된다는 사골국의 특성과 깍두기나 김치를 함께 먹는 것도 고려해 나트륨 섭취를 주의해야 한다.
또 사골을 직접 끓여먹을 때에는 우러난 기름은 최대한 건져내고 먹는 것이 좋다. 기름을 계속해서 건져내는 것이 번거롭다면 조금씩 덜어 냉장고에 식힌 뒤, 굳은 기름을 한꺼번에 건지는 것도 생활의 지혜다.
[사골, 그냥 ‘맛’으로만 드세요]
사골이 오랜 시간 사랑받아온 데에는 분명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국물에 맨밥만 말아먹는 것뿐만 아니라, 떡국이나 부대찌개, 된장국 등 다양한 한식의 육수로 쓰이는 것을 보면 사골 육수의 ‘맛’은 한국인의 정서 속에 뿌리 깊이 박혀있는 듯하다.
다만 사골 국물을 두고두고 장기 복용하는 ‘영양제’처럼 여기기보다는, 생각날 때 한 번씩 먹는 ‘별미’로만 즐기는 것이 건강에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