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 그리고 코셔 율법 이야기(7)
유대인, 그리고 코셔 율법 이야기(7)
  • 김정완(탈무드 원전연구소 소장)
  • 기사입력 2020.04.08 17:30
  • 최종수정 2020.04.08 17:2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고기와 우유를 함께 먹지 말라

[헬스컨슈머]이스라엘에선 고기 피자와 치즈 버거를 먹을 수 없다. 몇 년 전에 이스라엘 에프랏(Efrat)에 있는 쇼핑센터에서 점심 먹을 기회가 있었다. 마침 피자집이 근처에 있어서 찾아 들어갔더니 메뉴판에 야채 피자밖에 없었다. 파파로니나 미트볼을 얹은 피자를 주문하고 싶었으나 팔지 않는다고 했다. 채소/과일만 올린 피자를 한국에서는 맛본 적이 없어서 조금 당황스럽긴 했지만, 일단 그 맛이 궁금해서 조각으로 파는 올리브 피자, 브로콜리 피자, 옥수수 피자, 시금치 피자를 각각 시켰다. 다행히 그럭저럭 먹을 만했다.

 

[고기와 유제품을 함께 먹지 말라는 명령]

이스라엘 친구에게 물어보니 유제품과 고기를 함께 먹을 수 없다는 코셔 율법 때문에 야채/과일 피자 외에는 팔지 않는다고 했다. 자신은 페파로니 피자 같은 고기 피자를 한 번도 먹어본 적이 없다고 했다. 마찬가지로, 이 율법 때문에 이스라엘 맥도날드에서는 치즈 버거를 팔지 않는다고도 했다.

심지어 이스라엘 식당에서조차 고기 요리를 먹을 손님과 유제품이 섞인 음식을 먹을 손님을 출입문에서 구별하여 따로 따로 입장시킨다. 한 번은 일행들과 함께 예루살렘 다운타운 예후드(Yehud) 거리에 있는 식당에 갔더니 출입구에서부터 고기를 먹을 거냐, 유제품을 먹을 거냐며 종업원이 물었다. 고기 요리와 유제품 요리를 한 테이블에서 먹는 것조차 금하는 것 같았다. 편의점이나 식품점에서도 코셔 음식이 아니면 팔지도 않을 뿐더러 고기와 유제품을 섞어 놓고 팔지도 않는다.

사진제공: 게티이미지코리아
사진제공: 게티이미지코리아

[명령의 근거]

코셔 율법에 따르면, 유대인들은 고기와 우유는 절대로 함께 먹어선 안 된다. 이를 바사르 브할라브(Basar b'chalav, 우유 속 고기라는 의미) 율법이라고 부른다. 이는 다음 토라 구절에 따른 것이다. "너는 염소 새끼를 그 어미의 젖으로 삶지 말지니라." 이 구절은 한 군데만 등장하는 게 아니다. 출애굽기 23:19, 출애굽기 34:26, 신명기 14:21 등 세 번에 걸쳐 등장한다. 성경은 어떤 구절도 쓸모없는 구절이 없다고 한다. 무려 3번이나 똑같이 기록돼 있다면 그만큼 중요한 계명이라는 말이다.

그래서 그런지, 유대인들은 이 율법을 지키기 위해 엄청나게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여기서 고기라 함은 육고기와 새고기를 말한다. 따라서 육류와 유제품, 새고기와 유제품은 절대 동시에 먹어서 안 된다. 같이 넣고 요리를 해서도 안 되고, 둘을 섞은 것에서 어떤 이익도 취해선 안 된다. 육고기와 새고기는 분명 다른 고기지만 눈으로 보기에 구별이 어려우므로 이 율법에서는 같은 고기로 간주한다. 다만 물고기는 여기서 말하는 고기에 해당되지 않으므로 물고기와 유제품은 함께 먹을 수 있다. 달걀은 중립 식품(Pareve)이어서 무정란은 유제품과 함께 먹을 수 있지만 유정란은 수정됐다는 이유로 닭고기와 같은 범주에 넣기 때문에 유제품과 함께 먹어선 안 된다. 여기서 한 가지 주의할 것은 보통은 코셔에 코셔가 더해지면 코셔로 인정하는 게 일반적이지만 이 경우는 코셔로 인정받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이런 범주에는 육류와 수산물, 새고기와 수산물도 함께 요리하거나 먹어서도 안 되는 경우도 포함된다.

사진제공: 게티이미지코리아
사진제공: 게티이미지코리아

[기다렸다 먹고, 구분하라]

두 종류의 음식은 먹는 순서에 따라 기다리는 시간도 달라진다. 고기를 먹은 다음 우유와 같은 유제품을 먹으려면 최소한 6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입에 작은 고기 조각이나 기름기가 남아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유를 마신 후엔 별도의 기다리는 시간 없이 곧바로 고기를 먹을 수 있으나 고기를 먹기 직전에 반드시 입안을 물로 헹궈야 한다. 다만 치즈 같은 고체로 된 유제품을 섭취한 다음 고기를 먹으려면 최소한 6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이때 고기를 먹기 직전에 반드시 고형의 음식을 먹고 난 뒤에 입안을 물로 헹궈야 한다. 입 안에서조차 두 종류의 음식이 섞여선 안 되기 때문이다.

여유가 어느정도 있는 살만한 유대인 집에 가보면 부엌이 꽤 넓고 모든 것이 두 벌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오븐, 스토브, 식기 세척기, 싱크대, 각종 식기, 찬장, 프라이팬, 도마, 집게와 국자를 비롯한 모든 요리기구들이 두 세트로 마련돼 있었다. 한 세트는 소고기와 닭고기 등 육류를, 다른 한 세트는 유제품을 요리하거나 설거지, 상차림 할 때 쓴다. 모두 고기와 우유를 함께 요리해서도 먹을 수 없다는 율법을 지키기 위해서이다.

코셔 율법 중에서도 가장 복잡하고 지키는 데 많은 품이 드는 이 율법에 대해 하나님이 그렇게 명령한 이유에 대해선 토라 어디에도 기록돼 있지 않다. '하나님이 그렇게 명령하셨으니까 그냥 지킬 뿐이다'라는 것이 유대인들의 공통된 입장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이유를 나름대로 유추해보면, '누가 봐도 어미에게서 나온 젖으로 새끼를 삶는 행위는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잔혹한 행위로 보이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어미의 젖은 새끼를 살리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 죽이기 위해 존재하는 건 아니다. 다시 말하면, 새끼를 젖으로 삶는다는 것은 젖의 원래 목적에 정면으로 반하는 행위인 것이다. 이런 행위는 인간의 정서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음식 재료 자체뿐만 아니라 음식을 만드는 과정에서도 되도록 잔인함을 없애서 인간의 품성을 고양하시려는 하나님의 따뜻한 배려가 아닐까?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