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익희 교수의 음식 교양 이야기(쌀) 36
홍익희 교수의 음식 교양 이야기(쌀) 36
  • 홍익희(세종대 대우교수, <유대인 이야기>,<세 종교 이야기> 저자)
  • 기사입력 2020.03.31 09:00
  • 최종수정 2020.03.30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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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과 문명
최초의 쌀 농사국은 한국?

[헬스컨슈머]우리나라 사람들의 ‘주식’이자 ‘밥심’하면 빠질 수 없는 것이 바로 쌀이다. 이러한 쌀에도 숨은 이야기가 많다.

[쌀의 기원]

한민족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주식. 쌀. 현재 세계 인구의 3/5은 우리와 같이 쌀을 주식으로 먹고 있다. 쌀의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는데, 기원전 7,000년경 인도나 동남아시아에서 비롯되었다는 설이 가장 유력했다(하지면 최근 다시 뒤집어졌다). 쌀은 주로 물이 풍부하고 따뜻한 기후에서 잘 자라기 때문이다.

이 설에 따르면 벼농사는 양쯔강 하류를 거쳐 황하 유역에 약 5,000년 전 도달했다고 한다. 즉, 우리나라에는 중국을 통해 벼농사가 유입되었다는 이야기다. 그 뒤에도 이란을 거쳐 카프카스, 시리아와 소아시아까지 전해졌고, 아랍인들이 유럽에 진출하면서부터는 터키를 지나 발칸반도까지 전파되었다. 한편, 아메리카 대륙으로는 상대적으로 늦게 전해져서 16세기 초나 되어서야 처음으로 브라질에 도달했다고 한다. 이렇게 쌀은 밀이나 보리에 비해 역사적 스타트가 조금은 늦었다.

사진제공: 게티이미지코리아
사진제공: 게티이미지코리아

[‘밥심’의 민족, 인류 최초 쌀농사]

그런데 1993년 중국 후난(湖南)성 옥섬암 동굴에서 약 1만 1천 년 전 볍씨가 발견되면서 쌀의 학술적 기원이 중국으로 바뀌었다. 또 얼마 안 되어, 우리나라에서 중국보다 앞선 세계 최초의 쌀농사가 이루어졌다는 놀라운 증거가 나왔다.

현재 오창 과학 산업단지가 있는 충북 청원군 옥산면 소로리에서 1997~1998년 지표조사 중에 구석기 유물들과 함께, 고대 볍씨 59톨이 발견된 것이다. 출토된 볍씨는 야생 벼가 아닌 재배 벼였는데, 분석결과는 1만 3000년에서 1만 5000년 전의 것으로 나타났다. 그뿐 아니라 찍개, 긁개, 홈날, 몸돌, 격지 등 구석기 유물도 발견되었다. 이것은 분명한 최초의 벼 경작 흔적이었다.

이후, 소로리 볍씨는 사실 그보다 더 오래된 약 1만 7천년경의 것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한국선사문화연구원이 "소로리 볍씨의 절대 연대가 영국 케임브리지대에서 개발한 탄소연대 측정계산법 적용 결과, 기원전 1만5118년으로 나왔다"고 발표했다. 또, 지금까지는 학명 없이 '소로리 볍씨'로만 불렀으나 'Oryza sative coreaca(오리자 사티바 코레아카)' 곧 '한국의 고대벼' 라는 학명도 부여됐다”고 전했다.

이렇게 우리나라에서 쌀농사가 세계 최초로 이루어졌다는 것은 상당한 의미를 지닌다. 왜냐하면 농사를 지으려 마을공동체 형성이 그만큼 빨리 이뤄졌다는 이야기기 때문이다. 또한, 한반도가 쌀농사에 적합한 곡창지대라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밀농사와 달리 쌀농사는 매우 까다롭다. 기후나 수량 등 천혜의 조건이 쌀농사에 맞아야 한다. 서양에서도 이러한 최적의 조건을 갖춘 곳에서 쌀농사가 제일 먼저 시작되었는데, 그곳은 바로 포 강이 흐르는 밀라노 인근의 롬바르디아 평야였다.

씨족사회의 상징인 고인돌, 사진제공: 게티이미지코리아
씨족사회의 상징인 고인돌, 사진제공: 게티이미지코리아

[쌀농사에서 ‘국가’가 출현]

한반도의 세계 최초 쌀농사는 씨족사회 발전과 연결된다. 보리나 밀과 달리 쌀농사는 많은 사람들의 힘을 필요로 한다. 다시 말해서 논을 만들고 물을 대기 위해서는 수많은 사람의 협력이 필요하다. 특히, 쌀농사에 필수적인 모내기와 벼 수확, 배수 작업을 공동으로 하는 과정에서 두레와 마을공동체가 형성된다. 고대 한반도에서는 이렇게 씨족 공동체가 발달해 부족사회를 형성하고, 대규모 치수사업을 통해 국가의 등장도 여타 지역에 비해 빨랐을 것으로 추정된다.

본격적인 정치조직인 고대 왕국은 농경의 시작과 함께 등장했다는 것이 역사학계의 정설이다. 특히, 수로와 저수지 등 관개시설과 다리 등의 건설을 위해서는 인력이 대거 투입되어야 했다. 많은 노동력을 동원하고 이들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서는 정치 조직이 필수적이었던 것이다.

실제로 고대 봉건국가에서는 물을 다스리는 치수가 가장 중요한 정치 행위이자 왕의 업적이 될 만큼 의미가 있었다. 고대 동양에서 치수는 곧 정치였던 것이다. 이처럼 역사적인 관점에서 보면, 쌀은 국가를 만들어내는 대단한 능력을 지닌 농작물이다.

 

[인구 부양력이 높은 쌀농사]

쌀은 밀과 보리 등 다른 작물에 비해 생산성이 뛰어나다. 볍씨 한 톨로 700~1000톨의 쌀을 얻을 수 있다. 15세기 유럽에서도 밀을 뿌려 수확한 양은 종자 대비 3~5배에 불과했다. 현재도 밀은 기껏해야 20배 정도의 수확량밖에 얻지 못한다. 반면 벼는 17세기 무렵에 이미 종자 대비 20~30배의 수확량을 얻었고, 현재는 120~140배의 수확량을 올리고 있다.

영양학적으로도 쌀은 밀에 비해 탄수화물뿐 아니라 양질의 단백질을 풍부하게 함유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쌀은 비타민과 미네랄도 풍부해 영양 면에서도 균형 잡힌 식품으로 인정받고 있다(출처: <세계사를 바꾼 13가지 식물>, 미나가키 히데히로 지음).

이탈리아의 쌀요리 '리조또', 사진제공: 게티이미지코리아
이탈리아의 쌀요리 '리조또', 사진제공: 게티이미지코리아

[세계의 쌀 요리]

쌀은 그 깊은 역사만큼이나 세계 곳곳에 다양한 형태로 그 흔적을 남겼다. 특히, ‘아시아는 밥, 유럽은 빵’이라는 말처럼, 쌀을 주식으로 하는 아시아에서 쌀 음식이 더욱 다양하게 나타난다. 우리나라만 해도 쌀을 가지고 할 수 있는 음식들을 보면, 밥, 떡, 한과, 막걸리, 식혜 등 무궁무진하게 많으니 말이다.

그럼, 쌀 요리에는 무엇이 있을까? 많은 독자들이 가장 먼저 베트남 쌀국수 포를 떠올리실 것 같다. 베트남 북부에서 프랑스 수프의 영향을 받아 생긴 쌀국수는 베트남이 분단되면서 남으로 전해졌다. 동남아가 유독 쌀국수로 유명한 까닭은 바로 열대지방의 특성상 밀이나 메밀 같은 작물을 기르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밀로 국수를 만들던 동북아 지역과는 달리, 대신 풍부하게 자라는 인디카 품종(안남미) 쌀을 이용했다. 여기에 동남아 특유의 기후문제 때문에 향을 강하게 하다보니 은은하게 먹는 동북아의 국수와는 다른 방향으로 발달하게 되었다.

한편, 말레이시아나 인도네시아에서는 주로 밥을 기름에 볶아먹는다. 이들이 먹는 쌀 역시 인디카 품종으로 알곡이 가늘고 길며 푸석푸석해 우리 쌀처럼 찰기가 없다. 그래서 이들은 쌀을 기름에 볶아서 먹는데, 말레이시아의 ‘나시레막’, 인도네시아의 ‘나시고랭’이 대표적이다.

또한 흥미로운 쌀 요리 중 하나가 카레라이스이다. 커리(Curry)는 아시다시피 인도 요리이다. 이는 인도를 식민지로 삼았던 영국의 영향을 받아 점차 변하기 시작했다. 이후 커리가 세계적으로 알려지게 된 것은, 1870년대 일본의 한 유학생이 미국행 배에서 커리를 처음 접한 이후라고 한다. 그 후에 일본으로 전해진 커리는 밥과 같이 먹으면서 이름도 일본식으로 발음한 ‘카레라이스’가 되었다. 분명 카레의 시초는 인도였는데, 세계화는 쌀을 주식으로 하는 일본의 몫이었던 것이다.

아시아에 비해 다양하지는 않지만, 서양에도 대표적인 쌀 요리가 있다. 서양에서 벼농사를 가장 먼저 시작한 이탈리아의 리조또이다. 이름 자체가 쌀을 뜻하는 ‘리소(riso)’와 적음을 나타내는 접미사 ‘토(tto)’가 합쳐져 ‘짧은 시간에 만드는 쌀 요리다. 리조또는 16세기경 밀라노에서 만들어졌는데, 당시 ‘파에야’ 태생지인 스페인의 지배 아래 있어, 리조또 탄생에 최적의 환경이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리조또는 이탈리아뿐 아니라 전 세계 사람들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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