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익희 교수의 음식 교양이야기(보리) 7
홍익희 교수의 음식 교양이야기(보리) 7
  • 홍익희(세종대 대우교수, <유대인 이야기>,<세 종교 이야기> 저자)
  • 기사입력 2019.09.10 13:00
  • 최종수정 2019.10.08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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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스컨슈머] 우리는 매일 음식을 먹는다. 하루 3끼로 계산하고, 365일의 1년을 80번정도 반복하게 된다손치면 벌써 87,600끼니이다. 하지만 그렇게나 많이들 접하게 되는 이 녀석들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알까? 밥상머리에서 말해주기 좋은 지식, 이것이 바로 '어른의 교양 이야기'다. 교양은 재밌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약속하신, 젖과 꿀이 흐르는 풍요로운 땅에 내려 주신, 축복받은 일곱 가지 식물이 있다. 축복받은 일곱 가지 식물이란 밀, 보리, 포도, 무화과, 석류, 올리브, 대추야자(꿀)를 뜻한다(신명기 8,7-8).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아름다운 땅에 이르게 하시나니 그곳은 골짜기든지 산지든지 시내와 분천과 샘이 흐르고 밀과 보리의 소산지요 포도와 무화과와 석류와 감람나무와 꿀의 소산지라.”

 

[보리의 역사]

보리도 밀과 함께 인류 최초의 농작물이었다. 게다가 재배가 아니라 처음 먹게 된 역사를 따져보면, 보리가 오히려 밀이나 쌀보다도 앞선다고 할 정도이다.

보리가 야생종에서 재배종으로 변한 것에 관한 최초의 기록은 이집트 아스완 부근에 위치한 ‘와디 쿠반야’ 유적이다. 이 유적은 기원전 17,000∼15,000년의 구석기시대 후기로 추정된다. 그만큼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보리는 그 뿌리를 터키 남부와 티베트에 두고 있다. 그 후 보리는 유럽과 중국 등지로 전파된 것으로 보인다.

보리는 기후와 토질을 막론하고 매우 잘 자라는 작물이다. 이 특징 덕분에 다양한 환경에서 재배가 가능해 많은 지역에 상당히 빠른 속도로 퍼져갔다. 이러한 보리가 한반도지역으로 전파되어 재배되기 시작한 시기에 대해서는 명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학자들은 그 시기를 기원전 5~6세기로 추정한다.

 

[쑥보다도 강한 보리의 생명력]

보리의 크나큰 장점은 바로 그 경이로운 생명력이다. 보리는 그 생명력이 뛰어나 가을에 파종만 해 놓으면 추운 겨울에 강인하게 자라서 초여름에 열매를 맺는다. 농약도 필요 없어 유기농 식품으로 키우기 쉽다. 강한 생명력을 지닌 쑥조차도 겨울에는 뿌리만 땅속에서 그 생명을 유지하는데 보리는 혹한의 추운 땅에서 왕성하게 자라는 걸 보면 보리는 쑥보다도 강한 생명력을 지닌 것으로 보인다.

고대 수메르 지역에서 소금기가 지하에서 올라와 밀농사를 못 짓게 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이때 한 농부가 이를 보리로 대체해 농사지을 정도로 보리는 염분에도 비교적 강한 내성을 갖고 있다. 추운 겨울에 아무 곳에서나 잘 자라는 보리는 현대과학으로도 해명할 수 없는 놀라운 신비를 품고 있다.

보리와 밀, 이 둘은 특히 겨울에 농사를 짓기에 잡풀도 없고 벌레도 없어 무공해 농사가 가능한 놀라운 작물이다. 게다가 겨울에 땅을 놀리지 않고 작물을 심어 흙의 생명을 지켜주는 환경 파수꾼의 역할도 톡톡히 하고 있다. 20세기 들어 보리가 밀이나 쌀 등으로 대체되었지만, 아직도 세계 곳곳에선 보리가 전통음식으로 자리 잡고 있다. 모로코나 몰도바, 라트비아 지역은 지금까지도 보리가 주식이다.

인류가 석기시대의 수렵채취 생활을 마감하고 한 곳에 정착하여 밀과 보리농사를 짓기 시작한 것은 매우 의미가 크다. 경제사를 제도발전 차원에서 다룬 공로로 노벨상을 받은 더글러스 노스 교수는 이를 ‘신석기혁명’이라 명명했으며 이는 산업혁명에 버금가는 큰 변화로 보았다. 그만큼 보리는 밀과 더불어 인류의 삶에 큰 변화를 가져다준 식량이었다.

사진제공: 게티이미지뱅크
사진제공: 게티이미지뱅크

[보리의 효능]

보리에는 식이섬유 외에 칼슘, 인, 아연, 비타민 B2 등이 많이 함유돼 있어 성장에 좋고 빈혈 예방에도 효과적이다. 보리에는 인간에게 유익한 각 성분이 일반 쌀보다 적게는 2배, 많게는 16배까지 함유되어 있다. 보리의 효능은 이뿐만이 아니다. 보리는 발암물질을 몸 밖으로 배출하는 성분을 포함하기 때문에 보리를 많이 섭취하면 대장암 등을 예방할 수 있다. 이 외에도 보리에 풍부한 섬유질이 장내 지방을 흡착해 배설하기 때문에 혈당 수치도 일정해지는 등 뛰어난 효능을 보인다.

 

[먹기보단 마시는게 더 맛있는]

보리의 장점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보리’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맥주 아닌가. 맥주는 보리의 씨앗을 싹 틔운 ‘맥아’로 만든다. 또한 한국인들에게는 다소 생소하겠지만, 서양인들이 사랑하는 위스키 역시 보리로 만든다. 몰트위스키의 ‘몰트’(malt)가 바로 맥아다.

사실 우리나라에서도 맥아를 이용한 전통음료가 사랑받아왔으니, 바로 식혜다. 달고 시원해 갈증을 날려버리는데 그만인 식혜의 핵심 재료는 엿기름인데, 이 엿기름이 바로 맥아를 의미한다.

껍질을 벗기지 않은 보리를 물에 담가 두어 싹을 내서 말린 것이 엿기름이다.

보리를 비롯한 곡물은 싹이 틀 때쯤 많은 양의 디아스타제(아밀라아제)를 만들어낸다. 어린 싹은 아직은 광합성도 못하고, 뿌리로 영양을 빨아들이는 것도 버겁다. 그 대신 씨앗에 많이 함유되어 있는 녹말을 당분으로 바꾸어 성장 에너지를 얻는데, 덕분에 당화효소의 함량이 크게 늘어난다. 싹이 터서 당화효소의 양은 크게 늘어났지만 녹말은 아직 별로 소비되지 않았을 때 말린 것이 바로 맥아이다.

신석기시대에 인류는 이미 곡식의 싹을 틔우면 소화하기에 좋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듯하다. 실제 곡물이 발아하는 과정에서 효소인 디아스타제가 만들어져 곡물의 녹말을 당분으로 바꾸는 작용을 한다. 이렇게 단맛이 나기 때문에 '엿을 만들려 기른 싹'이라는 의미에서 '엿기름'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옛날에 설탕과 꿀이 귀해 이것을 대신 감미료로 쓰기도 했다.

사진제공: 게티이미지뱅크
사진제공: 게티이미지뱅크

[맥주의 기원, 신전]

루브르 박물관에는 기원전 4,200년경의 ‘모뉴멘트 블루’ 점토판이 있다. 거기에는 수메르 사람들이 방아를 찧고 맥주를 빚어 ‘니나 여신’에게 바치는 모습이 기록되어 있다. 이 점토판을 해독한 결과, 수메르인들은 오늘날과는 달리 보리로 만든 빵을 물과 함께 섞어서 자연발효 시켜 맥주를 만들었다고 한다.

점토판에 의하면 그 무렵 수메르 사람들은 맥주를 신이 인간에게 내린 선물로 생각하여 사원 안에서 종교의식의 하나로 맥주를 빚었다. 그 무렵 술은 신을 영접하는 영험한 물질이자 나중에는 술 자체가 신격화되기도 했다. 이는 고대 브라만교, 조로아스터교, 힌두교에서도 보이는 공통된 현상이었다.

수메르 사람들은 맥주를 ‘마음에 즐거움을 주고 육체에 행복을 주는 음료’라고 불렀다. 그들은 국가로부터 매일 2~3 주전자의 맥주를 지급받았다는 기록도 있다. 당시의 맥주는 보리뿐 아니라 잡곡과 렌틸콩, 귀리 등을 섞어 만들었고, 발효된 맥주에서 곡물을 거르지 않고 먹었기 때문에 많은 건더기를 품은 걸쭉한 음료였다. 덕분에 식사 대용으로 충분해 ‘마시는 빵’이라고 부를 정도였다.

 

[종교의식에도 보리가?]

그 무렵 신전에서 맥주를 빚은 이유가 또 하나 있었다, 바로 종교적인 이유다.

그 당시 풍년을 기원하는 기우제에는 맥주가 필히 있어야 했다. 수메르 사람들은 비를 ‘농사에 도움을 주기 위한 신의 땀방울’이라고 여겼다. 특히 신들이 성행위를 자주해야 땀을 많이 흘려 비가 내려 풍년이 든다고 생각했다.

또한 그들은 여신이 성적으로 흥분해 땀을 흘리게 하려는 목적으로, 신전의 여사제들이 신전에서 신에게 보여주기 위한 성행위를 진행했다. 그래서 신전 제례에는 참가자들이 여사제와 '사통하는' 의식이 포함되어 있었다. 말하자면 성행위가 곧 그들의 종교의식이였다고 볼 수 있겠다.

이 과정에서도 그들은 신을 더 잘 영접하고, 신과 더 잘 소통하기 위해(술에 취한 상태를 일컫는 것으로 보인다) 성행위할 때 맥주를 마셨다. 이쯤 되면 참으로 오랜 옛날부터, 오만 곳에 다 스며든 것이 보리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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